[기획탐방①] 서봉주(西鳳酒) 3,000년, 영혼의 향기를 찾아서
작성일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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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탐방①] 서봉주(西鳳酒) 3,000년, 영혼의 향기를 찾아서
김만수 기자
승인 2026.08.17 11:37
- 주(周)·진(秦)의 승전주에서 이백·소동파의 시문(詩文)까지… 3천 년 역사 품은 '백주의 영혼'
- 중국 4대 명주이자 백주의 기원… 독창적인 '봉향형(凤香型)'으로 세계를 물들이다
[중국 바오지 펑샹=김만수기자]중국 문명의 뿌리이자 주나라 문화의 중심지인 산시성(陕西省) 바오지시(宝鸡市) 펑샹구(凤翔区). 이곳에서 탄생한 서봉주(西鳳酒)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3,000년 중국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담긴 명주다. 주나라 왕실의 제례주에서 시작해 진시황의 승전가, 당나라 왕실과 이백·소동파의 시, 그리고 '백주의 영혼'이라는 깊은 뿌리를 거쳐 오늘날 중국 4대 명주로 자리 잡기까지, 서봉주에 숨겨진 깊은 역사와 맛의 비밀을 들여다본다.
“한 방울의 서봉주에 중국 역사의 반이 담겨 있다(一滴西鳳酒, 半部華夏史).”
중국 산시성 바오지시 펑샹구는 봉황이 울었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한 '봉향(凤翔)'의 도시다. 예로부터 비옥한 주원 평야에서 자란 질 좋은 수수(고량)와 깨끗한 지하수 덕분에 일찍부터 술 빚는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약 3,000년 전 주나라 시대부터 이 땅에서 빚어진 술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성한 매개체이자 왕실의 중요한 제사와 연회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핵심적인 술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훗날 1976년 푸펑현 청동기 항아리 속에서 실제로 발굴된 연두빛 '3,000년 전 잔류 주액'으로 실증되며 고대 왕실 제례의 숨결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서봉주는 늘 영웅들과 함께했다. 베이징대학에 소장된 진나라 죽간 《주령(酒令)》에 기록되어 있듯, 당시 사람들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와 가락을 즐기는 고도의 풍류로서 술을 즐겼다. 특히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은 어린 시절 펑샹(옛이름 옹주雍州)에서 성년식을 치렀으며, 6국을 정벌하고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때마다 이곳의 술로 장수들과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승전을 축하했다. 진시황의 승전가 뒤에는 3,000년 역사를 품은 이 술이 항상 곁에 있었던 셈이다.
화려했던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서봉주의 명성은 황실과 당대 최고 문인들의 낭만을 모두 사로잡았다. 측천무후(武則天) 시절 펑샹 지방의 술 향기에 끌려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해지며, 당 현종(玄宗) 시대에는 양귀비(楊貴妃)와 함께한 궁중 연회의 필수 진상품(貢酒)으로 지정되어 황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황실의 술은 곧 시인들의 영감이 되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펑샹(鳳翔)을 찾아 "술잔을 들며 시를 읊으니 천하의 근심이 사라진다(举杯吟诗, 尽销天下愁)"라며, 서봉주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깔끔한 풍미에 반해 잔을 기울였다. 당대 문인들에게 서봉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시적 영감을 불어넣는 최고의 낭만이었다.
이어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와의 인연은 서봉주의 인문학적 가치를 한층 더 높였다. 펑샹에서 관직을 지내던 소동파는 서봉주의 맛과 향에 깊이 매료되어 "서봉주의 맛은 천하에 으뜸이요, 그 향기는 만 리를 간다(西凤酒味贯天下, 香闻万里)"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가 가뭄 끝에 반가운 비가 내리자 온 마을 사람들과 희우정(喜雨亭) 아래에 모여 서봉주를 나누며 "기쁜 비를 함께 기뻐하고 축배를 드니, 천하의 시름을 잊는다(喜雨同欢, 举杯忘忧)"던 감흥은 지금도 백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풍류의 한 장면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서봉주가 지닌 수천 년의 향기는 결코 홀로 고립되어 흐르지 않았다. 《로현지(瀘縣志)》의 기록처럼 명나라 시절 서칠차(舒七茶)가 산시의 우수한 누룩과 장인을 이끌고 들어가 '노주대곡(瀘州大曲)'의 기틀을 다진 것이나, 소금 상인 곽씨가 펑샹의 서봉주 기법을 흡수해 훗날 마오타이주의 전신이 된 '화마오(華茅)'를 빚어낸 역사는 서봉주가 백주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기원이자 백주의 영혼이었음을 증언한다.
이처럼 진시황의 기상과 당 현종·측천무후의 황실 연회, 이백과 소동파의 낭만, 그리고 백주의 기원이라는 정통성을 품고 전통을 이어온 서봉주는 신중국 설립 직후인 1952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전국평주회'에서 마오타이, 분주, 노주어가와 함께 대한민국에도 잘 알려진 중국 4대 명주로 공식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서봉주가 수천 년간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독자적인 '봉향형(凤香型)'이라는 맛의 스타일을 완성한 데 있다. 백주의 대표적 향인 청향형의 깔끔함과 농향형의 풍부한 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잔에 입을 대는 순간 상큼한 과일향과 은은한 꽃향기가 피어나고, 목을 넘긴 후에는 깔끔하고 시원한 여운이 남아 "마실 때는 부드럽고, 삼킨 후에는 상쾌하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이처럼 수천 년의 역사와 풍류를 담은 서봉주의 향기는 오늘날 세계 무대로 뻗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주류대상 수상을 비롯해 세계 30여 개국으로 향하는 이 술은, 파리 오페라 극장의 밤을 봉황의 향기로 물들이고 국제 포럼의 공식 주류로 쓰이며 동양 주류 문화를 전파하는 거룩한 문화 사절(使者)로 전 세계의 잔을 채우고 있다.
김만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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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 기자
승인 2026.08.17 11:37
- 주(周)·진(秦)의 승전주에서 이백·소동파의 시문(詩文)까지… 3천 년 역사 품은 '백주의 영혼'
- 중국 4대 명주이자 백주의 기원… 독창적인 '봉향형(凤香型)'으로 세계를 물들이다
[중국 바오지 펑샹=김만수기자]중국 문명의 뿌리이자 주나라 문화의 중심지인 산시성(陕西省) 바오지시(宝鸡市) 펑샹구(凤翔区). 이곳에서 탄생한 서봉주(西鳳酒)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3,000년 중국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담긴 명주다. 주나라 왕실의 제례주에서 시작해 진시황의 승전가, 당나라 왕실과 이백·소동파의 시, 그리고 '백주의 영혼'이라는 깊은 뿌리를 거쳐 오늘날 중국 4대 명주로 자리 잡기까지, 서봉주에 숨겨진 깊은 역사와 맛의 비밀을 들여다본다.
“한 방울의 서봉주에 중국 역사의 반이 담겨 있다(一滴西鳳酒, 半部華夏史).”
중국 산시성 바오지시 펑샹구는 봉황이 울었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한 '봉향(凤翔)'의 도시다. 예로부터 비옥한 주원 평야에서 자란 질 좋은 수수(고량)와 깨끗한 지하수 덕분에 일찍부터 술 빚는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약 3,000년 전 주나라 시대부터 이 땅에서 빚어진 술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성한 매개체이자 왕실의 중요한 제사와 연회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핵심적인 술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훗날 1976년 푸펑현 청동기 항아리 속에서 실제로 발굴된 연두빛 '3,000년 전 잔류 주액'으로 실증되며 고대 왕실 제례의 숨결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서봉주는 늘 영웅들과 함께했다. 베이징대학에 소장된 진나라 죽간 《주령(酒令)》에 기록되어 있듯, 당시 사람들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와 가락을 즐기는 고도의 풍류로서 술을 즐겼다. 특히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은 어린 시절 펑샹(옛이름 옹주雍州)에서 성년식을 치렀으며, 6국을 정벌하고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때마다 이곳의 술로 장수들과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승전을 축하했다. 진시황의 승전가 뒤에는 3,000년 역사를 품은 이 술이 항상 곁에 있었던 셈이다.
화려했던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서봉주의 명성은 황실과 당대 최고 문인들의 낭만을 모두 사로잡았다. 측천무후(武則天) 시절 펑샹 지방의 술 향기에 끌려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신비로운 전설이 전해지며, 당 현종(玄宗) 시대에는 양귀비(楊貴妃)와 함께한 궁중 연회의 필수 진상품(貢酒)으로 지정되어 황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황실의 술은 곧 시인들의 영감이 되었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펑샹(鳳翔)을 찾아 "술잔을 들며 시를 읊으니 천하의 근심이 사라진다(举杯吟诗, 尽销天下愁)"라며, 서봉주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깔끔한 풍미에 반해 잔을 기울였다. 당대 문인들에게 서봉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시적 영감을 불어넣는 최고의 낭만이었다.
이어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와의 인연은 서봉주의 인문학적 가치를 한층 더 높였다. 펑샹에서 관직을 지내던 소동파는 서봉주의 맛과 향에 깊이 매료되어 "서봉주의 맛은 천하에 으뜸이요, 그 향기는 만 리를 간다(西凤酒味贯天下, 香闻万里)"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가 가뭄 끝에 반가운 비가 내리자 온 마을 사람들과 희우정(喜雨亭) 아래에 모여 서봉주를 나누며 "기쁜 비를 함께 기뻐하고 축배를 드니, 천하의 시름을 잊는다(喜雨同欢, 举杯忘忧)"던 감흥은 지금도 백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풍류의 한 장면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서봉주가 지닌 수천 년의 향기는 결코 홀로 고립되어 흐르지 않았다. 《로현지(瀘縣志)》의 기록처럼 명나라 시절 서칠차(舒七茶)가 산시의 우수한 누룩과 장인을 이끌고 들어가 '노주대곡(瀘州大曲)'의 기틀을 다진 것이나, 소금 상인 곽씨가 펑샹의 서봉주 기법을 흡수해 훗날 마오타이주의 전신이 된 '화마오(華茅)'를 빚어낸 역사는 서봉주가 백주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기원이자 백주의 영혼이었음을 증언한다.
이처럼 진시황의 기상과 당 현종·측천무후의 황실 연회, 이백과 소동파의 낭만, 그리고 백주의 기원이라는 정통성을 품고 전통을 이어온 서봉주는 신중국 설립 직후인 1952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전국평주회'에서 마오타이, 분주, 노주어가와 함께 대한민국에도 잘 알려진 중국 4대 명주로 공식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서봉주가 수천 년간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독자적인 '봉향형(凤香型)'이라는 맛의 스타일을 완성한 데 있다. 백주의 대표적 향인 청향형의 깔끔함과 농향형의 풍부한 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잔에 입을 대는 순간 상큼한 과일향과 은은한 꽃향기가 피어나고, 목을 넘긴 후에는 깔끔하고 시원한 여운이 남아 "마실 때는 부드럽고, 삼킨 후에는 상쾌하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이처럼 수천 년의 역사와 풍류를 담은 서봉주의 향기는 오늘날 세계 무대로 뻗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주류대상 수상을 비롯해 세계 30여 개국으로 향하는 이 술은, 파리 오페라 극장의 밤을 봉황의 향기로 물들이고 국제 포럼의 공식 주류로 쓰이며 동양 주류 문화를 전파하는 거룩한 문화 사절(使者)로 전 세계의 잔을 채우고 있다.
김만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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